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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형태의 행동통해 노동자의 권리 쟁취해야..
 영국의 과학기술혁신체제 (5)

과기25시  제61호
고영주 정책위원

영국 공공연구기관의 노동조합과 노사관계

영국은 산업별 노조 체제와 복수 노조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유럽 노조들에 비해 노조 사이에 조직대상은 훨씬 유연하고 포괄적이어서 많이 겹친다. 앞의 글에서 이야기한 세가지 종류의 공공연구기관 국공립연구기관, 정부지원 공공연구기관, 연구회 연구기관 - 의 종사자들은 Prospect 라는 이름의 전문직 노조와 공공서비스노조 (Public and Commercial Services Unions, PCS )에 가입해있다. 공공연구기관 종사자의 노조 가입률은 평균 80% 정도이다. 다양한 부문이 같이 포함되어 있어 PCS는 조합원이 30만명이고 Prospect는 10만 5천명에 이른다. 참고로 민간연구소의 연구원들은 민간부문 최대 노조인 Amicus라는 노조에 가입해있다.

교섭형태는 다양해서 일부 정부 연구기관의 경우 정부 부처와 직접 교섭하거나 개별 공공연구 기관의 사용자들과 사이에 대각선 교섭이 이루어진다. 연구회 연구기관의 경우 연구회가 직접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때문에 노조는 연구회와 직접 교섭한다. 공무원을 포함해서 모든 공공연구기관은 실질적으로 파업권에 제한이 없다. 연구회 연구기관들은 연구회로부터 안정적으로 재정 지원을 받으며 예산 확보를 위해 예산 부처 등을 들락거리지도 않는다. 기관 평가도 4 - 5년에 한번씩 이루어지고 연구과제도 다년도 중장기 과제가 대부분이다. 짧은 것이 3년 정도이다.

노조 위원장의 임기는 1년 또는 2년으로 대의원에 의해 선출하며 사무총장의 임기는 5년으로서 전체 조합원의 직접 선거로 선출한다. 영국의 노조는 외국 산별노조와 마찬가지로 위원장 보다는 사무총장이 실질적인 모든 권한을 행사한다.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는 지금 영국 노총의 사무총장은 국가권력 서열 열손가락안에 들어간다. 노조의 조직 운영은 흔히 알고있는 관료화된 산업별 노조라는 상식을 넘어 상당히 민주적이다.

사업장 별로는 조합원 50명당1명의 현장 대의원 (흔히 shop-steward라고 불림), 사업장 대표 또는 작업장 안전 대표 등을 조합원들의 직접 선거로 매년 선출하며 지역별 지부에서는 지역 지부의 대표, 중앙조직의 대의원들을 역시 직선으로 선출한다. 위 직책을 가진 사람들은 단체협약에 의해 모든 공식적 노조 활동에 유급 조합활동을 보장받는다. 매년 열리는 노조 정기 대의원대회에 두 번 정도 초청 받아 참관할 기회가 있었는데 보통 3박4일간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진지하게 이루어지고 회의 안건 (노조 조직 구성이 복잡하다 보니 안건이 노트 한 권일 정도이다) 하나하나마다 찬반 토론을 거쳐 결정하는 것을 보았다. 중요한 안건에 대해서는 치열한 논쟁도 불사하고 집행부가 제출한 안건을 부결하거나 상당히 수정하기도 하였다.

거의 90%이상 대의원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중간 이탈없이 참가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중간에 노조의 과학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있는 나이 50정도의 중견 연구원과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사업장에서 종사자들이 다양하게 노조 활동에 참가하고 있고 기관 측과의 정식 교섭이나 다양한 협의 방식을 통해 실질적으로 임금과 연구활동등 모든 내용에 대해 노조가 개입하고 해결하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특히 노조는 교육과 정책 개발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다. Shop steward (현장 대의원) 는 정기적으로 노조와 정부의 지원에 의해 지역 대학에 만들어진 특별 교육장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다양한 교육과 토론에 참가한다. 이외에 사업장별 작업안전대표자에 대한 교육과 토론 프로그램이 있고 지역별로 설치되어 있는 공공 성인 교육센터와 연계하여 조합원들에게 다양한 직업 교육과 문화 교육의 기회도 제공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한 주제별 교육 (신자유주의등)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있다. 두 노조는 모두 과학기술관련 정책위원회를 설치 (노조밖의 과학기술전문가, 다른 노조나 단체등과도 연계) 하고 다양한 정책적 대응과 대안 개발을 하고 정기적으로 별도의 정책 자료집과 기관지등을 발간한다.

영국 보수당 정부하에서 공공연구기관에 대한 구조조정과 민영화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질때 당시 노조에서 국회에 제출한 정책 자료집과 대안 보고서들은 학계에서도 그 내용과 수준을 인정받았고 실제로 정부의 정책을 많이 바꾸었다. 작년에 과학기술노조의 몇몇 기관에서 노사 공동으로 공부하고 있는 만체스터 대학의 과학기술혁신정책 연구소를 방문해서 교수와 간담회를 가진 일이 있다. 그때 질문중의 하나가 노조의 정책 활동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교수의 대답은 보수당때 정부는 공공연구기관에 대해 너무 급하게 일방적으로 구조조정과 민영화를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연구역량의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다.

그러나 노조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강한 목소리를 냄으로써 더 나빠지는 것을 막을 수있었다며 앞으로도 노조의 역할은 혁신을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저명한 교수는 강의에서 대처 정부 때 노조가 영국 병의 근원이라며 상당히 약화시켰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현재 영국의 아래로부터의 혁신 역량을 오히려 약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강조하고 노동자들의 혁신 역량의 확산과 강화, 그것을 수렴할 수 있는 노조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곤 한다.

영국 공공연구기관과 노조의 역사는 오래되었다.영국 공공연구기관의 실질적 시초인 화학연구소 (1842년), 한국의 표준연구원과 역할이 비슷한 National Physical Laboratory (1900년) 에 설치된 이래로 2차대전 이후 확대되어 지금도 4조원 이상의 정부 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공공연구기관의 노동조합은 혁신의 중요한 주체로서 다앙하게 정책 결정 구조에 참가하면서 현장 종사자들의 다양한 혁신 아이디어나 요구들을 수렴하고 배출해내는 창구 역할을 강화내나가고 있다.

최근 한국에서도 국가혁신체제가 강조되면서 공공연구기관의 혁신 역량이 다시금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여전히 귀찮은 존재로 여기거나 연구원이 무슨 노동자인가라는 식의 생각들, 노조가 관료들의 이해를 관철하는데 걸림돌이다라는 천민적 인식과 실제로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한 다양한 시도와 부당한 지배 개입들, 노조를 약화시켜야 기관장이 출세하고 예산을 많이 확보할 것으로 여겨지는 천박한 문화가 존재하는 한 진정한 혁신과 국가과학기술의 미래는 없다.

최근 기획예산처의 5개년 국가재정운용 계획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과학기술행정체제를 개편하는 과정에서도 노동조합에게는 털 끝만큼의 참여 공간도 공식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이 조합원들의 요구를 담아 공공연구기관의 혁신을 위해 필요한 공동의 절실한 요구들에 대해서도 오랫동안 교섭을 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들은 정부 핑계만 대고 정부는 기관에 공을 넘기면서 회피하기 바쁘다. 그래서 과기노조는 다시금 조정 신청과 투쟁 결의를 한다.

정부와 사용자들의 거부와 회피, 그리고 탄압, 노동조합의 공동 행동이 여전히 한국 공공연구기관의 노사관계를 해결하는 거의 유일한 통로라고 한다면 어찌 혁신이 가능할 것인가. 그것이 과학기술 선진국과 혁신을 부르짖는 우리네 현주소다. 그러나 어쩌랴, 다양한 형태의 공동행동을 통해 노동자로서의 권리와 올바른 정책을 쟁취하고 진정한 사회 혁신의 길로 나아갈 수 밖에… -끝-

2004-06-30 13: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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