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을 기준으로 보면, 지난 10년간 국가연구개발비는 IMF 직후인 98년(7% 감소)과 99년(5.2% 증가)을 제외하고는 줄곧
두자리수의 높은 증가율을 보여왔다. 그 결과 92년 4조 9890억원에 불과했던 국가연구개발비는 2001년에는 16조 1105억원으로
약 세배나 늘어났고, 특히 정부가 부담하는 비율은 그 사이에 18%에서 26%로 증가했다. 그런데, 아직도 현장의
과학기술노동자들은 아직도 불안하고 그들의 장래는 불투명하기만 한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통계치로만 어림짐작하자면, 사람에 대한 투자보다는 시설에 대한 투자가 여전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 한
원인일 수 있다. 점차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기계장치와 토지, 건물에 대한 자본적 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3.4%)이나 독일(9.9%)에 견주어 볼 때 대단히 높다(15.1%). 또한 연구개발비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기초연구비(12.6%)나
응용연구비(25.3%)의 비중은 오히려 위축되고 개발연구비(62.1%)가 대폭 늘었다는 것이다. 과학기술부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 PBS가 처음 도입된 1996년 이후 총연구개발비는 5조 2325억원이 증가했는데, 그 3분의 2(3조 4979억원)가
개발연구비로 집중되었다. 바로 정부가 아무리 기초기술에 대한 투자 확대를 외치고 이공계 기피현상 타파를 역설한다고
하더라도 실천이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는 반증이다.
그러나 현장의 과학기술노동자들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국가연구개발비에서 차지하는 인건비의 비중이나 기초기술·공공적
기술에 대한 투자의 비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연구개발예산을 배분하고 지원하는 기준과 원칙의 문제이다. 그 동안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는 최우선 원칙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이래로 우리나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대통령(정부)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 얼마나 집중해서 지원하느냐 하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과학기술현장의 합의나
국민의 요구와는 아랑곳없이 대통령이 이걸 하라고 하면 수천억원도 아낌없이 투자되었고(예, 핵융합연구), 과학기술부 장관이
국외여행에서 인상깊었던 연구주제가 곧바로 중요한 국책연구사업으로 부상했다가 장관의 퇴임에 맞춰 사라지기도 했다(예, G7의
어떤 과제). 그러다 보니, 권력의 핵심인 청와대에 과학기술수석비서관을 두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대단히 중요한 요구가 되어
버렸고, 어떤 과학기술자들의 모임에서는 “연구개발예산이 국가적으로 종합 조정되고 중복투자를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바로 과학기술수석을 설치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내세우고 있다.
결코 그것은 아니다. 제대로 된 수석비서관의 역할은 일면 필요할 수도 있지만, 지난 시기 우리나라 과학기술정책이 청와대
주변의 관료들과 일부 엘리트 과학자들에게 의존해 왔다면, 앞으로는 정부가 과학기술현장과 직접 소통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수년간 장관들 위주로 짜여진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 현장의 대표성을 갖는 민간위원들이 적어도 절반 이상 진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여전히 우리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를 확대 강화하는 것이 국가과학기술정책 수립과정에 현장의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되고 또 수용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유력한 장치라고 판단한다. 그것이 선택과 집중에서 탈피하여 현장의
요구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국가연구개발비의 효율적인 배분을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그 구체적인 요구들은 다음 호에 계속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