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과학기술혁신 정책 체제 IV -고영주 정책위원 |
과기25시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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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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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공공연구기관
영국의 공공연구기관은 첫째 중앙 정부 및 지방정부 부처에 속해있는 국공립연구기관, 둘째 공무원은 아니지만 주로 부처의
연구 지원을 받는 공공연구기관, 그리고 셋째 연구회 연구기관 등 크게 3가지 형태로 이루어져있다.
국공립연구기관은 공무원신분으로서 거의 모든 재정이 부처에서 지원되나 연구 및 운영 자체는 부처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독립성과 자율성을 갖는 Executive agency 형태로 존재하면서 정부 부처의 고유한 임무와 서비스를 집행하거나 지원하기 위해
전략연구나 응용연구를 주로 수행한다. 공무원 신분이고 재정을 거의 전적으로 부처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국공립
연구기관과 비슷하나 소규모 시험연구중심인 한국과 달리 영국의 국공립연구기관은 전체 공공연구기관 중 차지하는 비중이
여전히 크며 오랫동안 축적되어온 R&D 역량도 상당하다.
두번째 형태의 공공연구기관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지만 정부 부처로부터의 재정 지원에 의존한다. 이들 공공 연구기관은
국공립연구기관보다 훨씬 많은 자율성을 가진 민간 연구기관이나 부처의 임무나 역할과 관련된 보다 장기적인 연구개발을
수행하고 재정의 상당부분을 정부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이다. 특정 부처 산하에 있으면서 그 부처의 연구개발
프로그램을 주요하게 수행하는 우리나라의 과학기술부 및 산업자원부 산하 출연기관과 비슷하다. 그러나 영국의 이러한 형태의
많은 공공연구기관은 대학에 소재해 있거나 대학과 연계고리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보수당 정부시절 국공립 연구기관의
민영화를 추진하였으나 일부 몇 개 기관만이 실질적으로 민영화되었고 민영화 이후 정부 부처로부터 재정 지원을 더 많이 받는
공공연구기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대부분 정부 부처는 국공립 연구기관이나 산하 공공연구기관의 연구개발을 통한 과학기술 정보와 지식, 정책적 자문을
주요하게 부처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연구기관의 자율성과 공정성은 중요하게 지켜져야 하는 가치로서
인식되고 실제로 존중된다.
세번째 연구회 연구기관(Research Council Institutes)은 대학의 소규모 연구를 넘어서는 규모의 연구, 정부 부처의
공공연구기관보다 더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연구에 치중한다. 대체로 수준 높은 과학기술연구, 인력양성, 지식 및 정보의 확산,
과학기술에 대한 대중의 신뢰 획득 등을 주요한 목적과 전략적 과제로 삼는다. 연구회 연구기관의 종사자는 모두 해당 연구회와
직접적인 고용관계를 맺으며 대부분 정규직이다. 연구과제에 따른 계약직 연구원이 최근 늘어나고는 있으나 임금이나 기타
노동조건은 아무 차별이 없으며 그 비율도 전체적으로 15% 정도를 넘지 않는다. 기관 운영비와 85% 이상의 연구비는
연구회로부터 안정적으로 지원된다. 최근에 정부부처, 민간, 유럽연합, 자선단체 등으로부터의 연구비 유입이 늘고 있고 경쟁
예산이 늘어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연구회 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은 연구회 이외에 예산 부처나 의회, 기타 정부 부처 등 연구비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수주나 로비에 매달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는 한국의 연구회와 달리 영국의 연구회가 예산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연구기관장 임기는 5년 정도인데 대개
정년을 5-6년 남겨둔 과학기술자 중에서 연구회에서 임명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임기를 보장해줌으로써 소신껏 일하게 하고
연임을 위한 정치적 로비를 원천적으로 차단한다.
위 세가지 형태의 공공연구기관은 정부의 3년 단위 예산 편성 과정과 부처별 연구회별 혁신 전략과 연계하여 전략적 목표와
과제를 조정한다. 연구의 질, 협력과 연계, 과학적 증거에 기초한 정책, 혁신, 효율, 미래 예측과 광범위한 참여에 기초한 투자
우선순위, 대중의 신뢰와 참여, 세계화 등이 주요한 정책 이슈이며 이는 시스템 실패 이론과 네트워크 이론을 주요 담론으로
하여 해결 방향을 선택하고 있다.
위 공공연구기관은 민간을 포함한 국가 전체의 연구개발비 중에서 10% 정도인 2조원 정도를 연구개발비로 사용하며 대체로
3분의 1씩의 비중을 차지한다. 기관 평가는 대체적으로 5년마다 정부 부처나 연구회에 의해 이루어지고 계약 연구 과제의 경우
대개 3년에서 5년 단위의 평가가 이루어진다.
공공연구기관 역시 나라마다 그 형태나 전체 국가 연구개발 체제에서의 비중과 역할이 매우 다르다. 그것은 역사적 발전 경로와
현재의 사회 경제적 조건, 여러 이해집단간의 갈등과 합의 구조 및 새로운 담론, 정치적 선호도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공공부문 과학기술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국의 공공 연구기관은 시장 실패의 보완과 사회복지 확충을
위한 국가의 연구개발 개입 확대 과정에서 확산되고 발전되어 왔다. Thatcher (1979-1992) 및 Major(1992-1997) 가 이끌던
보수당 정부 시절 정부 실패의 담론을 내세워 광범위한 민영화와 구조조정이 top-down방식으로 추진되었으나 일부만
민영화되거나 국공립에서 일반 공공연구기관으로 바뀌었으며 정부의 재정 지원은 오히려 확대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광범위한 의견 수렴과 토론을 배제한 구조조정, 연구개발의 성격을 무시한 급격한 변화의 강요가 많은 문제를 야기하였으며 특히
우수한 연구개발 인력의 유출과 연구개발 기반의 약화를 초래하였다는 것이 대부분의 연구 및 정책 평가의 결론이다.
이후 집권한 노동당은 그래서 민영화라는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으며 정책 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이해관계 집단의 참여를
기본으로 전제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실패나 정부 실패를 넘어서서 시스템실패의 담론을 통해 공공-민간 파트너쉽과 장기적인
국가 혁신 시스템 구축에 골몰하고 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공공연구기관도 보수당 정부 시절에 비해 안정화되어 있고 공공이냐
민간이냐 논쟁도 상대적으로 적어졌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블레어 정부가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추구하면서 공공부문의 민간식
경영, 효율과 경쟁을 강조하고 있고 그래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최근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와 관련해서 역사적으로 공공연구기관 노동조합의 역할은 중요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음 호는 그래서 공공연구기관의
노동조합과 노사관계에 대한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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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22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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