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총선이 한국 사회의 50년 정치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결과를 낳으면서 끝났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첫번째 변화는 한나라당의 지역정당화와 민주당과 자민련의 몰락이다.
냉전 이데올로기, 정경유착, 재벌체제를 확대 재생산하며 기득권 보수 세력을 대표하면서 국회를 과점해왔던 한나라당은
특정지역에 기반한 2당이 되었다. 냉전 수구의 지역정당 자민련은 비례대표 한 석도 못 얻으며 지역구 4석에 그침으로써 이제
정당으로서의 그 생명을 마감하였다.
민주당은 그나마 갖고 있던 탈냉전 보수 세력으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고 한나라당과의 공조를 통한 반노(反盧) 전선 확대와
전라도 지역주의에 기대는 옹졸하고 안이한 총선 전략에 집착함으로써 스스로 몰락하였다.
반공 이데올로기와 정경유착, 재벌 경제와 지역주의 정치 구조 속에 성장해온 한나라당과 자민련의 퇴조와 몰락, 상대적으로
탈냉전의 차별성은 지녔지만 부패 비리와 보스 중심의 반민주적 정당 운영, 역시 지역주의의 틀 안에서 안주해온 새천년민주당의
몰락은 반공, 재벌, 정경유착, 지역주의로 점철해온 한국사회 정치에 대한 국민의 거부와 심판 민의가 완강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야 3당의 무리하고 정략적인 탄핵 시도는 그러한 민의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그나마 박근혜 효과를 통해 견제세력으로
살아남은 한나라당은 이후 박근혜 대표를 중심으로 차떼기, 지역당 이미지를 제거하고 건강한 보수 정책 정당으로서의 시도가
이어질 것이나 이는 결코 쉽지 않은 과제가 될 것이다.
두번째 변화는 현역의원 49명에 불과했던 열린 우리당의 152석 과반수 1당으로의 대 약진이다.
노무현 정부 1년에 대한 실망, 탄핵심판과 이미지 정치로 일관한 총선 전략, 열린 우리당 후보들의 함량 미달과 부패 연루
등에도 불구하고 냉전, 부패와 학연의 먹이사슬, 보스 중심의 지역주의 정치 세력을 패퇴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더 컸던
탓이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 우리당은 성장 중심 신자유주의 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급격한 시장 및 자본시장 개방,
외국자본에 대한 특혜, 노동시장 유연화 및 노조 배제, 공공부문의 사유화, 규제 완화, 경제성장 위주로 사고되는 과학기술등은
그러한 정책 노선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이러한 노선을 견지하는 한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강조하며 당선되었으면서도 결국 한국 경제를 지배하는 미국에 굴복하고
이라크 파병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진다.
노동자 서민의 권리와 사회복지를 강조하면서도 재벌과 부자에게 이로운 세금제도를 고치지 못한다. 노동법과 노사관계는 갈수록
자본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향한다.
한국의 농업은 대책없는 시장개방으로 궤멸 상태로 나아간다. 800만이 넘는 노동자가 이미 비정규직으로 전락하였고 정규직도
고용불안과 극심한 경쟁에 내몰린다. 그래서 약화된 내수시장을 살리기 위해 가계대출 확대 정책을 펴지만 결국 신용불량자와
생계형 자살자를 양산한다.
빛을 내며 과외와 공부를 강요해보지만 대학 나온 비정규직 노동자 인생이 기다리고 있다.
개발과 효율성의 이름으로 환경과 인권은 소홀히 취급된다. 민주주의를 외치는 그래서 결과적으로 열린 우리당의 지지를 높이는
촛불시위는 허용하지만 노동자, 농민, 장애인, 철거민, 노점상등의 생존과 권리를 외치는 파업과 집회는 성장위주 신자유주의
노선에 반하기 때문에 허용되지 않거나 억압당한다. 과학기술이 왜곡되고 표류하는 것도 성장을 위한 조급한 수단 정도로만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들어갔을 때 열린 우리당은 오히려 탈냉전 개혁적 중도 보수 노선을 외치는 박근혜 대표의
한나라당과 실질적인 정책의 차별성이 없어진다.
외국 자본에 더 우호적인 열린 우리당과 재벌에 더 우호적인 한나라당 정도의 차이이가 남는다고나 할까. 그들의 경쟁이 상대방
흠집내기와 네가티브 정치, 이미지 정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귀결이다.
세번째 주목되는 중요한 변화는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으로 표현되는 한국사회 진보정치의 의미 있는 등장이다. 권영길,
조승수 후보가 창원과 울산에서 거뜬히 당선되었고 13.1%의 고른 전국적 지지로 8명의 비례대표 후보를 보태 10명의 의원으로
일약 원내 제 3당으로 등극하였다.
이른바 진보를 자처하는 일부 인사들이 기존 정당을 통해 정치권에 흡수 변질되어온 경우는 있었지만 노동조합, 농민조직,
사회운동단체, 진보적 활동가등과 이에 동의하는 자발적인 지지 국민들에 기반한 대중적인 독자 정당의 형태로 의회에 입성하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불가능해 보였던 실험이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기존의 부패한 지역주의 정치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열린 우리당 식 성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노선도
동의하지 않는다.
열린 우리당의 과반수 석권이 부패와 지역주의 정치를 완화시킬지는 모르지만 신자유주의 노선을 강화시켜 오히려 외국자본의
한국경제 지배, 빈부격차 확대, 실업과 고용불안 증대, 극심한 경쟁문화, 노동자 권리 축소, 농업 및 환경 파탄, 과학기술의
왜곡 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의 진보정치는 그래서 야 3당의 부패 지역주의 정치에도 반대하지만 열린 우리당의 신자유주의 노선도 반대하며 그
모두를 뛰어넘는 새로운 담론을 그 존재의 근거로 삼는다.
그리고 그 방식도 기존의 보수부패 정치인에게 해결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노동자, 농민, 서민과 힘없는
이들이 주체로 나서서 바꿀 것을 약속한다.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의회 진입은 그동안 여야가 이견이 없었던 미국 중심 신자유주의 의제들이 17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쟁점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국회의원의 특권 폐지와 차별화된 정책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노동자 민중의 신뢰를 획득하고 당원
및 지지 기반을 넓히면서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해 갈 것이다.
노동운동에 자신감과 활동 영역 및 내용의 확대에도 기여할 것이다. 부실하고 방만한 양적 팽창의 열린 우리당은 노동자 민중의
실망 여론, 한나라당과의 경쟁, 민주노동당의 대중적 성장 속에서 내부 갈등과 분열의 소지도 시간이 가면서 커질 수있다.
물론 민주노동당의 향후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의원 개개인과 민주노동당 자체가 의회 내 투쟁과 타협, 당 외연 확대의
과정 속에서 본격적으로 당의 정책과 노선, 당내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과 논쟁이 시작될 것이며 이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노동자 민중의 진보정치가 의회내 활동으로 갇혀 역동성이 제한되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의원들에 대한 적극적인 정책 지원, 규율과 통제, 활발하고 광범위한 당원 정책 토론과 교육 등을 포함한 당내 평당원
민주주의의 확대 및 강화와 함께 당 정책의 대안적 완결성을 높여나가면서 노동자 민중의 쏟아지는 불만과 투쟁을 조직하고
연대하는 열정 또한 잃어서는 안될 것이다.
10명의 의원들 모두가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충분히 인식하고 앞에 놓인 과제들을 당원들과 함께 헌신적으로 뚫고 나가는
진보의 화살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민주노동당의 중심 축인 노동조합 또한 많은 과제를 부여받고 있다. 민주노총의 조합원 중 5%만이 당원에 가입해 있으며 외연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의 노동자 중심성은 약화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제도권 진입으로 노동조합 조직 역량의 강화와 지난한 투쟁 대신 의회 기대기가 확대될 수도 있다.
노동조합의 조직률 및 노동자 연대 의식의 확대 없이 민주노동당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정규직 노동조합의 내부 혁신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조직화, 진보적 부문운동 및 사회운동에 대한 개입과 연대가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 3당 지위 획득을 4천 조합원과 함께 열렬히 환영하며 축하한다.
작은 출발이지만 노동자 민중의 세상을 향한 거대한 발걸음이다. 그동안 지지하며 참여해준 조합원 동지들과 묵묵히 헌신하며
오늘을 이끌어낸 당원 동지들, 앞서 싸우며 희생한 선배 열사,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이 작은 영광이 돌려져야한다.
이제 노동조합 운동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세계, 열린 세상으로 전진한다.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은 민주노총과 함께 그
노동자 전진의 대열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면서 끊임없는 투쟁과 혁신의 한길로 달려 가야한다.
산업자원부의 불법 지배개입 및 노조 탄압 척결, 2004년 임금 및 단체 교섭 승리,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진보적 대안 제시, 소산별
노조로서의 지난 10년의 대중적 평가와 조직 발전 전략, 보궐선거 승리 등은 현재의 구체적 과제이다. 함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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